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전주 화약 (문단 편집) == 화약의 내용과 결과 == 1940년 출간된 '''역사소설''' 동학사에 따르면 동학 농민군이 당시 내세운 폐정 개혁 12개조는 다음과 같다. 그래서 21세기 초 연구에서는 폐정 개혁안은 후대에 창작된 것이고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는 학설이 세를 얻었으나, 최근 연구에 따라 폐정 개혁안이 실제 존재한다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. <동학농민전쟁과 갑오개혁에 대한 시민혁명적 관점의 분석>등 최근에 나온 논문이 많으니 참고해보자. ||1. 도인(道人)[* 동학교도]과 조정과의 사이에는 숙혐(宿嫌)을 탕척(蕩滌)하고 서정(庶政)을 협력할 것. 2.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사득(査得)해 일일이 엄징할 것. 3. 횡포한 부호배(富豪輩)를 엄징할 것. 4. 불량한 유림(儒林)과 양반배(兩班輩)는 못된 버릇을 징벌할 것. 5. 노비 문서는 불태워버릴 것. 6. 7종의 천인[* 일명 칠반천역(七般賤役)]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(白丁) 머리에 쓰는 평양립(平壤笠)은 벗어 버릴 것. 7. 청춘과부(靑春寡婦)의 개가를 허락할 것. 8. 무명잡세(無名雜稅)는 일체 거두어들이지 말 것. 9. 관리 채용은 지벌(地閥)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. 10. 왜(倭)와 간통(奸通)하는 자는 엄징할 것. 11. 공사채(公私債)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. 12.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(分作)하게 할 것. || 동학군은 자신들이 점령한 전라도 일대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폐정개혁을 서둘렀으나 [[나주]][* [[나주]]는 양반의 세력이 강해 원래 동학교도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동네였을 뿐 아니라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가지고 있어 동학군이 쉽게 관군을 격파하지 못하고 있었다.], [[남원]][* 결국 [[남원]]에서 저항하던 관군은 [[김개남]]이 지휘하는 동학군에 의해 강제로 진압당한다.] 등에서는 관군의 저항이 끊이지 않았으며 1894년 7월 여단장 오시마 요시마사(大島義昌) 및 2대대장 야마구치 케이조를 [[https://youtube.com/shorts/4Uj2ri9o-Aw?feature=share|필두로]] 일본군이 경복궁을 범궐(犯闕)하여 고종의 신변을 확보하고 친일내각을 세우자 개혁은 수포로 돌아간다. 결국 이 때문에 2차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다. [[분류:1894년/사건사고]][[분류:동학 농민 혁명]][[분류:19세기 협정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